월급이 들어온 날이었다.
은행 앱을 열었다.
오랜만에 통장 숫자가 커져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이번 달은 그래도 괜찮겠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퇴근하면서 평소 미뤄뒀던 걸 하나 샀다.
비싼 물건은 아니었다.
주말에는 외식도 한번 했다.
어차피 월급도 들어왔고 통장에도 돈이 있었으니 크게 문제될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5일 뒤 은행 앱을 다시 열었을 때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잔액이 생각보다 많이 줄어 있었다.
처음에는 카드값 때문인 줄 알았다.
내역을 아래로 내렸다.
카드대금.
나갔다.
월세.
나갔다.
통신비.
나갔다.
보험료.
나갔다.
대출 관련 자동이체.
또 나갔다.
한 줄씩 볼 때마다 월급날 봤던 잔액이 사실상 전부 내 돈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포개인회생을 알아보면서 수입과 지출을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내가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항상 현재 잔액만 봤다.
앞으로 며칠 안에 빠져나갈 돈은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월급날 200만 원이 보이면 200만 원이 있는 기분이었다.
실제로는 그중 상당 부분에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달 내역을 날짜순으로 다시 적어봤다.
월급 입금.
잔액이 가장 많았던 날.
카드대금 출금.
통신비 출금.
보험료 출금.
월세 출금.
숫자를 한 줄씩 적어놓으니 이상하게 보였다.
월급은 한 번에 들어오는데 돈은 며칠에 걸쳐 빠져나간다.
그 사이 며칠 동안만 통장 잔액이 커 보였다.
나는 그걸 여유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김포개인회생을 알아보던 중이라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월급날 통장 잔액에서 곧 빠져나갈 돈을 대충 빼봤다.
정확한 계산까지는 아니었다.
월세.
카드값.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
이 세 가지 정도만 먼저 제외했다.
남는 숫자는 처음 봤던 잔액과 꽤 달랐다.
그 숫자를 보고 나니 며칠 전 외식을 할 때 느꼈던 여유가 조금 민망했다.
그래서 다음 월급날에는 방법을 바꿨다.
월급이 들어왔다.
은행 앱을 열었다.
이번에도 잔액은 커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서 끝이었다.
이번에는 메모장을 열었다.
이번 달 아직 안 빠진 것
카드값.
월세.
통신비.
보험료.
자동이체.
대략적인 금액을 옆에 적었다.
그리고 잔액에서 빼봤다.
그제야 내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 감이 왔다.
남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혼자 하는 일이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달랐다.
통장 숫자가 갑자기 줄어든 건 아니었다.
그런데 마음속 숫자는 줄어 있었다.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며칠 뒤 실제 자동이체가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잔액이 줄어도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던 돈이 나간 것이기 때문이다.
김포개인회생을 알아보면서 가장 불편했던 건 돈이 적다는 사실보다 언제 얼마나 빠져나갈지 모르고 있다는 상태였던 것 같다.
예전에는 자동이체가 나갈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다.
또 뭐가 빠졌지?
지금은 적어도 큰 항목은 미리 알고 있다.
물론 변수가 없는 건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병원비가 생길 수도 있고.
차량 관련 지출이 생길 수도 있다.
가족 행사도 있다.
그래서 남은 돈을 전부 쓸 수 있는 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월급날 아예 돈을 여러 계좌로 나눠놓을까 생각했다.
고정비 계좌.
생활비 계좌.
비상금 계좌.
그런데 갑자기 계좌를 여러 개 관리하면 또 복잡해질 것 같았다.
일단은 지금 쓰는 통장을 그대로 두고 예정 출금액만 확인하기로 했다.
복잡하게 바꾸기보다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부분 하나만 고치는 게 더 쉬웠다.
얼마 후 친구와 밥을 먹다가 월급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가 말했다.
“월급날이 제일 부자 같고 그다음 날부터 가난해지잖아.”
예전 같았으면 그냥 웃었을 말이었다.
이번에는 너무 정확하게 들렸다.
나는 말했다.
“나는 한 5일 동안만 부자였더라.”
친구가 웃었다.
나는 진짜였다.
통장에 돈이 많아 보이는 기간이 딱 며칠 있었다.
그 며칠 동안 내가 가장 느슨해졌다.
그래서 지금은 월급날이 오히려 돈을 제일 조심해서 보는 날이 됐다.
김포개인회생 관련해서 내 상황을 정리할 때도 월급 얼마만 적지 않았다.
월급이 들어온 뒤 어떤 돈이 며칠 안에 빠져나가는지도 같이 봤다.
그래야 남는 금액이 보였다.
한 번은 월급날 잔액을 보고 충동적으로 온라인 쇼핑을 하려다가 멈춘 적도 있다.
장바구니에는 이미 물건이 들어 있었다.
결제 직전에 메모를 열었다.
다음 날 카드값이 빠지는 날이었다.
결국 결제를 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물건도 아니었다.
예전 같았으면 통장에 돈 있는데 뭐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돈 중 일부가 내일 사라질 걸 알고 있었다.
그 차이가 꽤 컸다.
요즘 은행 앱을 열면 잔액 숫자를 바로 믿지 않는다.
특히 월급날에는 더 그렇다.
숫자를 본다.
그리고 한번 생각한다.
여기서 아직 안 나간 돈이 얼마지?
김포개인회생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통장에 돈을 더 많이 만들어낸 건 아니다.
다만 월급날 잠깐 크게 보이는 숫자를 내 여유라고 착각하는 일은 줄었다.
이번 달에도 월급은 같은 날 들어왔다.
은행 앱 첫 화면에는 익숙한 숫자가 떴다.
예전 같으면 그걸 보고 마음이 먼저 풀렸을 것이다.
이번에는 화면을 닫기 전에 메모부터 열었다.
그리고 맨 위에 한 줄을 적었다.
아직 안 빠진 돈부터 확인.
월급날의 가장 큰 숫자보다 이제는 그 아래에 남을 숫자를 먼저 보는 편이 조금 더 마음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