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앱을 보다가 이상한 내역 하나에서 손이 멈췄다.
ATM 출금 300,000원
날짜는 한 달 전이었다.
30만 원이면 적은 돈은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에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금방 떠오를 줄 알았다.
“아, 그때 뭐 샀었지.”
이렇게 끝날 줄 알았다.
5분을 생각했다.
안 떠올랐다.
사진첩을 열었다.
그날 찍은 사진이 있는지 확인했다.
점심 사진 하나가 있었다.
김치찌개.
그게 전부였다.
30만 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은 것도 아닌데 돈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었다.
파주개인회생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내 지출을 한번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이런 내역이 생각보다 많았다.
카드 결제는 그래도 상호명이 남는다.
편의점.
주유소.
마트.
온라인 쇼핑.
그런데 현금은 달랐다.
출금한 사실만 남아 있었다.
그 뒤가 없었다.
나는 메신저를 뒤졌다.
한 달 전 대화를 위로 올렸다.
그날 친구를 만났는지.
가족에게 돈을 준 적이 있는지.
뭔가 현금으로 결제할 일이 있었는지 찾아봤다.
오후 4시쯤 엄마와 나눈 대화가 하나 있었다.
오는 길에 시장 좀 들러줘.
조금 기억이 났다.
시장에서 장을 봤다.
현금으로 계산했던 것 같다.
그런데 장을 본 금액은 많아봐야 몇만 원이었다.
여전히 30만 원 대부분이 남았다.
다음은 휴대폰 사진이었다.
저녁 7시쯤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 하나가 있었다.
차량 계기판이었다.
왜 찍었는지는 기억이 안 났다.
사진을 확대하다가 생각났다.
그날 자동차 관련해서 작은 수리를 하나 했다.
현금으로 계산했다.
기억이 조금씩 연결됐다.
수리비.
시장.
점심.
그리고 아마 남은 돈은 지갑에 넣어뒀다.
나는 바로 지갑을 열어봤다.
물론 한 달 뒤라 남아 있을 리 없었다.
파주개인회생 관련해서 내 상황을 정리하려던 날인데 결국 한 달 전 내 동선을 복원하고 있었다.
조금 허무했다.
돈을 많이 쓴 날도 아니었다.
그냥 현금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기록이 끊긴 것이었다.
그날부터 며칠 동안 지난 출금 내역만 따로 봤다.
20만 원.
10만 원.
5만 원.
금액은 달랐지만 비슷했다.
어떤 건 기억났다.
어떤 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특히 몇 달 전 내역은 더 심했다.
이걸 왜 뽑았지?
이 질문을 몇 번이나 했다.
처음에는 기억력이 나빠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카드 내역을 보면 상황이 달랐다.
몇 달 전 결제도 가게 이름을 보면 대충 무엇을 샀는지 기억났다.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 방식의 차이에 가까웠다.
그래서 파주개인회생을 알아보는 동안만큼은 현금을 사용하면 한 줄이라도 적어보기로 했다.
거창한 가계부는 만들지 않았다.
나는 가계부를 오래 써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모든 지출을 분류하기 시작하면 며칠 못 갈 것 같았다.
휴대폰 메모에 제목 하나만 만들었다.
현금
그리고 첫 줄을 적었다.
9/3 50,000원 출금 - 주차비, 시장
끝이었다.
며칠 뒤 10만 원을 또 출금했다.
이번에는 돈을 찾고 바로 적었다.
10만 원 - 부모님 전달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이 방식이 생각보다 편했다.
얼마 후 파주개인회생 관련해서 다시 통장 내역을 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출금 내역 하나를 보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은행 앱에는 여전히 이렇게만 나왔다.
ATM 출금 100,000원
하지만 메모를 열자 옆에 답이 있었다.
부모님 전달
예전처럼 사진첩부터 뒤질 필요가 없었다.
그게 꽤 큰 차이였다.
그렇다고 모든 돈의 흐름이 갑자기 깔끔해진 것은 아니다.
카드 결제 중에서도 기억 안 나는 게 있었다.
자동결제도 있었다.
소액이 너무 많아서 하나씩 확인하기 귀찮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예전처럼 대충 생활비였겠지 하고 넘기지는 않으려고 했다.
내가 어디에 돈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앞으로 무엇을 정리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게 더 어려웠기 때문이다.
며칠 뒤 친구와 밥을 먹다가 현금 이야기를 했다.
친구가 말했다.
“난 현금 뽑으면 그냥 돈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는데.”
예전의 나도 정확히 그랬다.
ATM에서 돈을 찾는 순간부터 그 돈은 통장 내역에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30만 원.
그 뒤에 5천 원을 썼는지 5만 원을 썼는지는 기록되지 않는다.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나도 그래서 한 달 전 30만 원 찾느라 탐정 됐잖아.”
친구가 웃었다.
“찾았어?”
“일부만.”
아직도 정확히 맞지는 않는다.
수리비와 시장에서 쓴 돈까지는 기억했다.
그 뒤의 몇만 원은 아마 며칠 동안 생활비로 조금씩 사용했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다.
예전 같았으면 그게 답답해서 아예 정리를 포기했을 수도 있다.
이번에는 그냥 정확히 모름이라고 적었다.
억지로 기억을 만들어내는 것보다는 그게 나았다.
파주개인회생을 알아보면서 돈 이야기는 전부 정확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내역을 발견하면 괜히 불안했다.
그런데 과거 내역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보다 지금부터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게 남기는 편이 현실적이었다.
요즘은 ATM에서 돈을 찾으면 은행 앱을 닫기 전에 메모부터 연다.
금액.
용도.
두 개만 쓴다.
얼마 전에는 7만 원을 출금했다.
메모에는 이렇게 적었다.
70,000원 - 가족 식사
그날 밤 지갑에 2만 3천 원이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굳이 계산기를 꺼내지 않았다.
적어도 7만 원이 왜 통장에서 빠졌는지는 알고 있었다.
한 달 전의 30만 원 내역은 아직 은행 앱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가끔 보면 조금 찜찜하다.
그래도 삭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와서 완벽하게 기억할 수도 없다.
대신 그 아래 최근 출금 내역들은 다르다.
50,000원
보자마자 어디에 썼는지 안다.
파주개인회생을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바뀐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었다.
ATM에서 돈을 찾고 돌아서기 전에 휴대폰에 한 줄 적는 일이었다.
이제는 통장에서 현금이 빠져나간 날이 있어도 한 달 뒤의 내가 탐정처럼 그날 사진부터 뒤지는 일은 조금 줄어들 것 같다.